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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이야기의 일부가 되었다.
- 등록일2025.06.11
- 조회수2211
“자네 나랑 장난하나?”
“아닙니다.”
교수님께서 몇천 페이지에 육박하는 종이를 책상 위에 던지셨다.
“종이 낭비일세. 이런 식으로 쓰지 말라고 몇 번이고 말했잖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그의 조언은 대체로 어떤 문장을 고치라기보단 아예 갈아엎으라고 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교수님, 어떤 부분을 고치길 원하시는지 알려주시면...”
“다. 전부 다 고치길 바라네.”
‘항상 이런 식이니 제가 뭘 배웠겠습니까’라고 말할 순 없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께선 한숨을 내쉰 후 안경을 닦았다.
그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답답한 마음만 커져갔다.
“자네 동기들 중 등단한 작가가 몇이지?”
“다섯입니다.”
“그래, 그 다섯이 창작욕을 불태울 때 왜 시간 낭비나 한 건가?”
“저도 열심히 써봤습니다만...”
“주제부터 필체까지 싹 다 고치라고 수십 번 말했네!”
순간적으로 놀라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고 고개가 밑으로 내려갔으며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둘 곳을 찾아 헤맸다.
“학점도 좋은데 왜 항상 써오는 글은 이따위냔 말이야.”
내가 답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였다.
“......죄송합니다.”
“옛날 같았으면 쓰레기통에 던졌을 글인데, 요즘 세상에 그러면 안 되니 받는 걸세.”
졸업작품을 받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받으신 거겠죠.
“내가 하라는 대로만 했어도 등단했을 텐데, 쯧.”
저는 교수님께 4년간 뭘 배운 건지 모르겠습니다. 매번 이런 식으로 쓰면 안 된다느니 비판만 하시지, 정작 어떻게 쓰는지 알려주신 적은 없잖습니까.
“죄송합니다.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속마음과 다른 진심이 있을까.
나는 허리를 굽혀 인사한 후 천천히 나왔다.
그는 내가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까지도 불만을 토로했다.
후, 이걸로 내 대학 생활도 마지막이구나.
오랜 시간 동안 하나의 소설을 집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도,
오늘로 마지막인 대학생 때까지.
그리고 방금 졸업작품으로 제출하고 나오는 길인데, 처참히 깨졌다.
하긴, 웹소설 플랫폼에서도 욕을 먹긴 했었지.
-진심 우리 할머니 일기장이 더 재밌을 듯.
ㄴ오늘은 밭에 물을 주었다.
ㄴ오늘은 손주가 말을 안 들었다.
ㄴ너 어디 사냐.
독자들은 내 작품을 조롱하기 일쑤였다.
어디 커뮤니티에서 ‘요즘 웹소설 작가 수준’이라며 입소문이라도 탄 건지 악플 수십 개가 달렸다.
그래도 십 년 넘게 연재했다. 작품을 좋아해서라기보단 업로드하지 않으면 허름한 노트북으론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천 편을 작성했다.
간간이 과제 때문에 순수문학도 썼으나 어릴 적부터 만들어온 이야기는 쉬지 않고 집필을 이어갔다.
그래서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다.
***
“이번에 인턴 합격했다면서?”
“아직 정규직도 아닌데 뭘.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난 토익이랑 자격증 여러 개 따서 항상 서류는 통과해도 면접에서 떨어지더라.”
취업설명회를 들으러 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와는 다른 세상인 것 같았다. 그들의 불안은 내가 부러운 것들로 가득했다.
“그래도 학교 다니면서 노력한 게 보람은 있더라.”
이어지는 한마디가 ‘내 노력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스스로 결론 내렸다.
지금이라도 작가의 꿈은 접고 취직을 우선해야겠지. 통장 잔고도 얼마 남지 않았고, 부모 없는 고아가 어디 기댈 곳도 없으니.
한숨만 푹푹 나왔다.
어째서 내 인생은 이 모양인 걸까. 나도 좋은 부모 만나서 돈 걱정 없이 살 수는 없었을까.
아니, 가난해도 상관없으니 기댈 수 있는 화목한 가정이라도 있었다면......
“땅 꺼지겠어요.”
차분한 인상
미소를 머금은 입
그리고 살짝 휘어진 눈.
윤서아다.
교양수업이 몇 개 겹쳐 친해지게 되었는데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거리를 두었다.
그럼에도 먼저 다가와 인사해 주곤 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가볍게 나눈 후 그녀는 내 옆에 앉았다.
“이번이 마지막 학기시죠?”
“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등록금만 낭비하다 졸업하게 됐습니다.
“저희 앞으로 사회 나가서도 힘내봐요!”
“저희라면...... 벌써 졸업하세요?”
“네! 저 조기졸업하거든요!”
역시 윤서아다. 복수전공에 조기졸업이라니.
“축하드려요.”
“저는 여의도 쪽으로 직장 다니게 됐는데, 문호 씨는요? 가까우면 졸업하고도 만나요.”
벌써 취직까지 했구나.
“저는 아직 취직을 못해서요.”
윤서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하하하, 에이~ 글 잘 쓰시니까 그걸로 성공하시면 되죠.”
그걸로 성공하긴 더 어려워 보입니다.
그녀의 작은 위로조차 받지 못하는 내가 작고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맞다, 문창과는 졸업하려면 소설이나 시 써서 제출하는 게 필수죠? 나중에 한 번 보여주세요.”
“이번 작품은 자신이 없어서요. 나중에 다른 거 보여드릴게요.”
방금 교수님께 깨지고 온 글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윤서아는 계속해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자신은 어떻게 살고 싶다, 최근 본 영화는 어떤 게 재밌었다, 근처에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다, 등 나에겐 와닿지 않는 이야기들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뒤로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는 계속하면서 재연재라도 해볼까.
1화부터 다시 작성하면 유입은 좀 늘 것 같고, 설정은 바꾸지 않는 게 나으려나?
인간들은 에피소드라 불리는 퀘스트를 차례대로 클리어하고, 성좌들이 이를 지켜본다. 마치 독자들처럼.
이 설정은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조금 뻔한 양산형이라 걱정되기도 한다.
나만의 설정이 아닌 다른 작품들의 설정을 덕지덕지 붙였으니 ‘또 회빙환이냐’ 같은 댓글이 달리는 것도 당연하겠지.
초등학교 때 처음 쓰기 시작한 이야기는 모두 나만의 것이었지만 성장하면서 재밌게 읽은 설정을 추가 했다.
남들과 비슷하면 어때. 내 특색이 묻은 건 변하지 않는데.
나는 내 글을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있었다.
......잠깐, 방금 뭐라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결말만 수정하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에게 잔혹한 이야기.
차마 쓸 용기가 나지 않는 이야기다. 그래서 더 과감해지고 싶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우웅-
그 순간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에게 메시지가 왔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더보기]
작가님이라고?
날 작가라고 불러줄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최근 공모전에 출품한 글도 없었고 꾸준히 웹소설 플랫폼에서 무료 연재만 이어가고 있었으니 분명 그쪽에서 온 연락일 것이다.
“잠깐만요.”
“신경쓰지 마세요. 중요한 연락은 받으셔야죠.”
-안녕하세요. 작가님의 작품을 오랫동안 함께 해온 독자이자 MD입니다.
여느 성공한 신인 작가들의 후기에 올라오던 웹소설 MD들의 연락. 그것이 나에게도 온 거다!
-저희 플랫폼에서 작가님 작품을 정식으로 런칭시키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미소가 지어졌다.
모두가 쓸모없다고 했던 시간이 드디어 인정받는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네! 저야 너무 감사드리죠!’
-죄송하지만 작가님께 드릴 수 있는 게 많지 않은데, 그래도 괜찮을까요?’
상관없다. 어차피 지금 올린 플랫폼에선 조회수도 처참해서 수익도 못 낸다.
-인세나 원고료 등은 최대한 맞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계약하면 안 된다고, 정확한 기준과 조건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수업 때 배웠으나 내 이야기가 더 많이 읽힐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저희가 일반적인 방법 말고 다른 방법으로 작가님께 지급하려고 하는데요.
신규 플랫폼이라 돈이 없는 건가?
-필통 속에 깃펜이 하나 들어있을 겁니다.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까.
-네?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고개를 든 순간, 책상 위 필통 사이로 튀어나온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
낡은 깃펜.
“클래식한 거 좋아하세요?”
“좋아하긴 합니다만, 이건 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장난이었나.
조금 화가 났다. 드디어 행복을 누릴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장난치지 마세요.
메시지를 보내고 얼마 안 있어 답장이 왔다.
-장난이라... 뭐, 이것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장난이라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당신은 진지하게 임해야 할 겁니다.
스마트폰의 검은 화면에서도 메시지는 계속되었다.
-곧 프롤로그가 시작됩니다. 준비하세요.
프롤로그라면 내 웹소설을 읽어봤다는 건데.
-시작.
왜인지 모를 위화감, 아니, 기시감이 들었다.
나는 차단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그러나 메시지 기록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오류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번쩍-
강의실 불빛이 모두 꺼졌다.
어리둥절하며 당황하는 사람도,
이렇게 된 거 대학로 가서 술이나 마시자는 사람도,
이런 문제는 공대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해가 중천이라 창문 사이 들어오는 빛으로도 취업설명회를 진행하기 충분해 보였다.
촤락-
검은색 커튼이 한꺼번에 내려오며 창문을 덮었다.
빛 한줄기 없는 완전한 어둠.
그리고 잠시 뒤, 스마트폰 불빛이 여럿 켜졌다.
“커튼이 움직이지 않아요.”
“문도 잠겨 있어요.”
“장난 그만하세요.”
“종강이라고 이렇게 하는 건가?”
분명 내가 아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럴 리 없다. 기막힌 우연이 연속되어 나타난 것뿐.
애석하게도 몇 초 뒤 나타난 거대한 홀로그램은 현실을 마주하게 했다.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아아악-!”
비명이 들린 곳으로 스마트폰을 비추자 한 학생이 불투명하게 일렁거리는 무언가를 머리에 쓰고 있었다.
입에선 기포가 올라왔고 손으로 벗으려 애써도 손이 투과할 뿐이었다.
분명 내가 아는 무언가.
나는 그 학생에게로 다가갔다.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확신하고 싶지 않았다.
[암흑 슬라임]
내 소설에 나오는 몬스터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주르륵-
끈적이는 점액질이 쏟아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 소리가 많아질수록 코를 통째로 뜯어내고 싶어지는 악취도 심해졌다.
“으아아악!!”
그리고 비명도 늘어났다.
슬라임들이 천장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강의실로 천천히, 사람들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면서.
[프롤로그가 시작되었습니다.]
칠판 위의 글씨는 천천히 사라졌고 다음 글자들이 적혔다.
[프롤로그: 그리운 세상]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창은 제목조차 의미심장했다. 내게 그리운 건 굉장히 불분명한 무언가였다.
마치 아주 오래 전의 기억처럼 형상조차 흐릿한 무언가. 그것이 선명해진 것인지, 혹은 닿을 수조차 없게 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건, 현실이 아니기에 유희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악몽이 되어 나를 덮쳤다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쓴 이야기의 일부가 되었다.
